
[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소래포구와 월곶포구를 넓게 보면 경기만(京畿灣)에 속한다. 이 지역의 해안가에서는 조수 간만의 차를 실감할 수 있는데 물이 빠지면 갯벌 위로 올라선 어선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갯벌이 드러날 정도로 물이 빠져도 흐르는 물길이 있는지 작은 배들이 오가곤 한다. 갯골이다.
갯골은 갯벌 사이로 흐르는 물길을 말한다. 썰물 때 갯벌 곳곳에 드러난 갯골을 보면 마치 깊고도 마른 계곡처럼 보인다. 하지만 밀물 때면 갯골로 먼저 물이 들어오고 갯벌은 나중에 물이 차기 때문에 조개잡이 나섰다가 갯골에 빠지는 사고가 종종 뉴스에 오르곤 한다.
경기도 토토 가입머니의 갯골은 특별하다. 내륙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서해로 흘러드는 하천이 조수의 영향을 받아 바닥을 드러내는 때가 있는데 영락없는 서해의 갯벌 그 모습이다. 그리고 간만의 차에 따라 갯벌이 물길이 되기도 한다. 바로 갯골이다. 내륙에 자리해 ‘내만(內灣) 갯골’로 정의하기도 한다.

시흥시 갯골생태공원과 폐토토 가입머니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에 있는 갯골생태공원은 폐토토 가입머니과 갯골을 테마로 한 공원이다. 공원이 자리한 곳은 과거 토토 가입머니이 있던 곳으로 내만 갯벌과 갯골로 형성된 습지이다.
공원 내 갯골 수로는 서해의 물때에 맞춰 물길이 생기거나 마른 내가 되거나 한다. 습지에는 작은 게 등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고, 습지 주변에는 다양한 초지 군락지도 조성되어 있다. 철새도 많이 찾아와 공원 곳곳에 탐조 장소가 있기도 하다.
갯골생태공원을 걷다 보면 눈에 띄는 목조 건물이 있다. 과거 공원 자리에 있었던 ‘소래 토토 가입머니’의 소금 창고였다. 시흥시를 포함한 경기만 일대는 예로부터 토토 가입머니이 많았다. 이들 토토 가입머니에서는 천일염(天日鹽)이 아닌 자염(煮鹽) 방식으로 소금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소금 제조법은 자염 방식이었다.
자염법은 도구 등을 이용해 바닷물을 퍼 올려 솥에다 부은 후 계속 끓이고 구워서 소금을 만드는 방식이다. 바닷물을 머금은 흙에서 염수를 추출해 끓이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반면 천일염은 바닷물을 토토 가입머니으로 끌어들여 바람과 햇빛으로 수분만 증발시켜 만든 소금을 말한다.

조선총독부는 오래도록 자염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해 온 경기만 일대의 토토 가입머니을 천일염 제조법으로 바꾸게 했다. 그렇게 경기만 일대의 토토 가입머니은 한국에서 천일염 제조법이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 되었다.
총독부는 소금 제조법을 규제한 이유로 대한제국 말부터 수입된 중국의 값싼 천일염을 대체하고 소금 자급자족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관할 토토 가입머니 조성 사업을 시행하며 제염 관영화를 꾀했다.
그렇게 소래토토 가입머니은 조선총독부의 관영 토토 가입머니이 되었다. 경기만 일대에는 관영 토토 가입머니이 또 있었는데 인천의 주안토토 가입머니과 남동토토 가입머니, 시흥의 군자토토 가입머니 등이 그곳이다. 1937년에 개통된 수인선 협궤철도는 경기만 일대의 소금을 운송하려는 목적으로 부설한 거였다.
관련 기록을 참고하면, 소래토토 가입머니은 1934년에 착공해 1937년에 준공되었다. 토토 가입머니과 함께 교량, 갑문, 지하배수로, 소금 창고 등이 함께 만들어졌다. 그리고 소금을 나르던 차량인 ‘가시렁차’도 있었다고 한다. 차가 움직일 때 나는 소리가 ‘가시렁 가시렁’처럼 들려서 인부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광복 후 소래토토 가입머니은 한동안 전매청 소관이었다가 상공부 산하의 대한염업주식회사에서 관할 하기도 했다. 그러던 1971년에 민영화되었지만 1996년에 폐업했다. 오늘날 토토 가입머니 터 일부는 골프장이 되었고, 나머지 부지는 시흥시가 소유하며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이곳에 남아있던 소금 창고 두 동은 2022년 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들 목조 건물은 소금 무게를 지탱하도록 벽을 기울여 설계한 특징이 있다. 지은 지 오래돼 기울었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소금 창고 주변은 토토 가입머니 문화 체험의 장이 되었다.

갯벌을 메워 농경지로
경기도 토토 가입머니에 가면 갯벌이나 갯골 같은 서해의 자연환경을 볼 수 있지만 드넓은 평야도 볼 수 있다. 호조벌이 그곳인데 오래전에 이 일대는 갯벌이었다. 그러니까 호조벌은 갯벌을 메워 농경지로 만든 간척지다.
전통적 간척법은, 물이 드나드는 뭍과 뭍 사이의 특정 지점을 잇는 둑을 만들어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 다음 그 안쪽 땅을 메우는 것이다. 공유수면매립이 주로 이런 방법으로 택지를 조성한다.
호조벌 또한 바다 쪽에 제방을 만들었다. 관련 자료를 참고하면, 토토 가입머니 포동 걸뚝에서 하중동 돌장재를 잇는 길이 약 720m의 인공 둑인 호조 방죽을 쌓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안쪽 땅을 메워 농경지로 만들었다고. 포동(浦洞)은 과거 포구가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지명이다. 이 일대가 지금은 내륙이지만 과거에 물길을 따라 배가 들락거렸다는 걸 의미한다.
뻘밭이었던 호조벌이 농경지로 변한 건 1721년(경종 1년)이었다. 호조벌과 호조 방죽의 이름에 들어간 호조(戶曹)는 조선시대의 육조 중 하나로 국가 재정을 담당하던 기관이었다.

호조벌은 호조들이라고도 하는데 호조에서 만든 벌판이라는 의미이다. 관련 자료를 참고하면, 호조벌을 농경지로 만든 목적 중에는 경작지 확보뿐 아니라 홍수와 가뭄을 극복하는 물 관리도 있었다고 한다. 호조벌 사이로 보통천이 흐르는데 인근의 물왕저수지와 도창저수지와 연결되는 하천이다.
호조벌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건 1970년을 전후로 시행한 경지 정리 사업 덕분이다. 당시 지주들은 감보율에 따라 토지 일부를 기부했다. 그 땅 중 일부를 농로로 만들었는데 오늘날 토토 가입머니 시민들의 산책로로 사랑받고 있다.
토토 가입머니 자료를 참고하면, 호조벌은 약 150만 평(약 4.96㎢)의 넓이에 달하는 곡창 지대로, 토토 가입머니 특산미인 ‘햇토미’가 여기서 생산된다고 한다. 토토 가입머니 농업기술센터나 연꽃테마파크를 통해 호조벌에 접근할 수 있다.
호조벌의 농로를 걷다 보면 농경지가 무척 넓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지역에 가도 넓은 평야를 볼 수 있지만 그곳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과거, 이 일대가 바닷물이 드나들던 뻘밭이었다는데 참으로 많은 이의 노동이 스며든 땅이겠구나, 하는 그런 감상에 가깝달까.

한국전쟁 후 서해안 지역에는 크고 작은 간척지가 많이 생겼다. 그런 간척지 중에는 피난민들이나 한센병 병력자 등에게 땅을 메우는 조건으로 정착하게 한 지역이 여럿 있다. 이방인들에게 자기가 농사지을 땅을 직접 일구어 살게 한 것이다.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은 “간척 사업은 땅 없는 사람이 땅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고 그의 책에서 밝혔다.
물론 공정한 사후 행정 처리가 있었을 때의 일이라고. 결과적으로 공유수면을 소유한 측에게 좋은 일이 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공유수면은 대체로 국가 소유라 간척한 땅의 권리 또한 국가 소유로 등기되는 사례가 많았었다. 힘들여 땅을 메웠지만 형편이 닿으면 돈을 주고 되사거나 여의찮으면 결국 소작인이 되어버린 이들이 많았다는.
그래서일까. 서해에 면한 지역을 탐사하다 보면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스며든 땅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다음 글에서는 서해 연안에 사는 이들에게 소중한 교통수단이 되어주었던 수인선 협궤철도의 흔적을 찾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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